“인증받으라며 독려하더니 지금은 일반업체와 똑같이 취급”
공공급식·취약계층 식품지원사업에서도 HACCP 활용 실태 점검 필요
“담당 공무원이 모른다면 국민 먹거리 안전은 누가 책임지나”
정부가 국민 먹거리 안전을 위해 HACCP(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 제도를 확대·장려하고 있는 가운데, 정작 지방자치단체 일선 행정에서는 HACCP의 정책적 의미와 활용 기준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현장 주장이 제기돼 파장이 예상된다.
특히 약 19년 전 정부와 지자체 관계자의 권유를 믿고 **당시 약 9억원을 추가 투자해 HACCP 제조시설을 구축했다는 지역 식품업체 대표가 “이제 와서 담당 공무원들이 HACCP이 무엇인지조차 제대로 모른다고 한다” 주장하면서 지방행정의 정책 전달체계에 대한 전면적인 점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A대표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정부와 지자체 관계자들이 직접 현장을 찾아와 앞으로 식품유통에서 HACCP이 중요해질 것이며 시설을 갖추면 정부 차원의 지원과 장려도 있을 것이라는 취지로 설명했다”며 “그 말을 믿고 일반 제조시설보다 약 9억원을 더 들여 HACCP 생산시설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19년이 지난 현재 상황은 전혀 다르다고 주장했다.
A대표는 “HACCP 시설을 유지하려면 위생관리와 시설관리 등에 계속 비용이 들어가는데 정작 공공사업이나 공공급식 현장에서는 HACCP 인증업체라는 이유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며 “담당자에게 문제를 제기해도 ‘잘 모르겠다’는 답변만 돌아왔다”고 말했다.
■ “공무원이 HACCP을 모른다면…정책은 누가 현장에서 집행하나”
이번 논란에서 가장 주목되는 대목은 단순한 업체 지원 문제가 아니라 중앙정부의 식품안전정책이 지방행정 현장에서 제대로 전달되고 있는지 여부다.
정부가 HACCP을 식품안전관리의 중요한 제도로 운영하고 있다면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 역시 관련 제도를 이해하고 실제 행정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A대표는 “중앙정부에서는 HACCP을 강조하면서 정작 지역 담당자에게 이야기하면 HACCP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거나 자신들의 업무가 아니라는 식으로 대응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부가 업체에는 HACCP 시설을 갖추라고 권유하고 인증을 받으라고 해놓고, 막상 인증을 받은 뒤에는 행정기관이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기업 입장에서는 무엇을 믿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이는 지자체 담당공무원의 정책 이해도와 행정의 연속성에 대한 문제로 이어진다.
■ “인증업체 있는데도 공공사업에서 활용 안 해”…사실이라면 전수조사 필요
A대표는 지역에서 진행되는 학교급식 및 취약계층 식품지원사업 등에서도 HACCP 인증업체의 제품이 충분히 활용되지 않는 사례가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노인·독거가구·한부모가정 등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식품지원사업의 경우 식품의 위생과 안전성이 중요한 만큼 HACCP 인증 여부가 구매·선정 과정에서 어떻게 고려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A대표는 “지역에 HACCP 인증업체가 있는데도 다른 업체와 똑같이 취급한다면 도대체 HACCP 인증을 왜 받으라고 한 것이냐”며 “공공사업에서 어떤 업체가 어떤 기준으로 선정되는지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다만 HACCP 인증업체를 공공사업에서 반드시 우선 선정해야 하는지는 사업별 법령과 조달·계약기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관계기관의 구체적인 사업별 기준과 실제 계약 현황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
■ “9억원 투자하라더니…19년 뒤 남은 것은 관리비와 허탈감”
A대표가 밝힌 시설투자 규모는 당시 약 9억원이다.
현재 물가와 건축비 등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지만, 업체 측은 당시 상당한 규모의 추가 투자를 감수하고 HACCP 생산시설을 구축했다고 설명한다.
그럼에도 현재까지 시설 유지와 위생관리를 위해 지속적으로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는 것이 업체 측 주장이다.
A대표는 “1년에 한 차례 교육과 각종 위생관리, 정기적인 검사 등에 계속 비용과 인력이 들어간다”며 “시설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일반 제조시설보다 훨씬 까다롭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런데 공공기관의 구매현장에서는 인증을 받지 않은 업체와 별다른 차이가 없다면 업체들이 앞으로 무엇을 보고 HACCP 시설에 투자하겠느냐”고 지적했다.
■ 지자체가 답해야 할 5가지
이번 논란이 일회성 민원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각 지자체는 최소한 다음 사항에 대해 시민과 지역 식품업체에 설명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첫째, 관내 HACCP 인증업체는 몇 곳인가.
둘째, 지자체가 시행하는 공공급식·식품지원사업에서 HACCP 인증제품이 실제 얼마나 구매되고 있는가.
셋째, 해당 사업의 업체 선정 과정에서 HACCP 인증 여부가 평가 또는 검토 기준에 포함돼 있는가.
넷째, 담당공무원들은 HACCP 제도와 관련 법령·지침에 대해 정기적인 교육을 받고 있는가.
다섯째, 중앙정부의 HACCP 정책과 지자체의 실제 구매·지원정책이 서로 일치하고 있는가.
이 다섯 가지에 대한 자료만 공개돼도 지역에서 제기되는 HACCP 정책의 실효성 논란 상당 부분은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 “담당자가 모른다는 말로 끝낼 일이 아니다”
A대표는 “제가 원하는 것은 특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HACCP 인증을 받았으니 무조건 우리 업체 제품을 사달라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만든 식품안전 기준을 지방행정에서도 제대로 이해하고 공공사업의 식품 구매과정에서 합리적으로 검토해 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담당공무원이 모른다고 하면 그 자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담당기관이 확인하고 관련 부서와 협의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정책을 시행하는 행정기관이 정책 내용을 모른다는 것은 업체 입장에서는 매우 답답한 일”이라고 했다.
■ “HACCP을 장려한 정부, 이제는 지방행정을 점검해야”
이번 사례는 한 업체의 판로 문제를 넘어 중앙정부 정책과 지방행정 사이의 연결고리를 점검해야 한다는 과제를 던지고 있다.
정부가 식품안전관리체계를 강화하고 HACCP을 정책적으로 장려한다면 그 정책이 중앙부처 문서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지자체 담당공무원이 제도를 이해하고, 공공급식과 식품지원사업을 담당하는 관계자들이 식품안전 기준을 정확히 알고 있으며, 실제 구매·계약 과정에서도 관련 기준이 합리적으로 적용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특히 국민 세금이 투입되는 공공사업에서 식품을 구매할 경우 가격뿐 아니라 안전성과 위생관리체계를 어떤 방식으로 고려하고 있는지를 국민에게 설명할 책임도 요구된다.
정부가 기업에 HACCP을 권장하면서 기업이 막대한 비용을 들여 시설을 갖췄다면, 그 이후 인증제도가 현장에서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지 점검하는 것 역시 정책당국의 중요한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 “오늘도 HACCP 시설은 돌아가지만…”
A대표는 마지막으로 “19년 전에는 정부와 지자체의 말을 믿었다”고 말했다.
“국민에게 안전한 식품을 공급하겠다는 생각으로 시설을 만들었고 지금까지 HACCP 기준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런데 지금 와서 담당자가 HACCP을 잘 모른다고 한다면 업체는 누구를 믿어야 하느냐”는 것이다.
그의 호소가 사실이라면 문제는 특정 업체 하나에 국한되지 않는다.
정부가 장려한 식품안전정책을 지방행정이 제대로 이해하고 집행하고 있는지, 공공급식과 식품지원사업에서 식품안전 기준이 실제로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전수점검이 필요하다.
HACCP이 단순한 인증서 한 장으로 남는다면 막대한 시설투자와 지속적인 관리비용을 부담하는 업체의 참여 동력도 약화될 수 있다.
반대로 인증제도의 취지와 실제 행정·공공조달이 제대로 연결된다면 HACCP은 기업의 부담을 넘어 국민의 먹거리 안전을 강화하는 실질적인 정책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다.
이제 답해야 할 곳은 업체가 아니라 행정기관이다.
“정부가 하라고 한 HACCP, 지방행정은 현장에서 제대로 하고 있는가.”
이번 논란을 계기로 중앙정부와 각 지자체가 HACCP 운영 및 공공급식 활용 실태를 객관적으로 공개하고, 지역별 정책 집행의 차이가 있다면 그 원인과 개선방안을 국민 앞에 설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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